장미의 이름

캐서린 | 2009.10.03 21:35 | 조회 5743 | 공감 42
대학교수로봇 "Teach-CE"가 아스팔트 산에서 발견한 미확인 생명체를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때는 7095년 1월 1에 제작된 인공조명 "SUN-mkII"가
하늘 꼭대기로 빛을 쏘아올리고 있는 정오 시간이었다.

그의 사무실에 설치된 커다란 스크린에는 이렇게 문자들이 점멸하고 있었다.

"7102년 오전 8시47분32.4초 경, B-45-1 지역을 청소중이던 청소로봇 'VACM-24'가
아스팔트 바닥의 균열을 발견, 수리로봇 'REP-24'에서 도움을 요청하였다"

"균열은 지름 3.4562112cm의 작은 원형태로, 'REP-24'는 저장고의 타르덩어리를 꺼내
구멍을 메우려다가 뭔가를 발견, 산을 관리하는 'MOTHER-MOU'에게 보고하였다."

"디지털 VIDEO모드를 첨부합니다. 블루투스 기능을 사용하시려면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사진은 균열 밑으로 작게 솟아난 빨간색의 형이상학적 형태를 접사로 촬영하고 있었다.
빨간 구조물은 초록색 기둥에 의해 지탱되고 있었는데, 이 초록색 기둥엔
폐기물을 분쇄할때에나 사용하는 작은 원뿔모형이 군데군데 달려있었다.

'이게 뭐지?'

Teach-CE는 자신의 CPU에 알코올을 뿌려 충분히 식힌 뒤에
눈을 감고서 자신의 머릿속에 출력되는 이미지에 집중했다.
하지만 자신이 15년 동안 전담한 <아스팔트와 타르, 그리고 표지판>학에는
언급조차도 하지 않은 희귀한 생명체였다. 그는 자신의 머리 커버를 닫은 뒤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Teach-CE는 'MOTHER-MOU'산을 좋아했다.
그곳은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희귀한 표지판들이 꽂혀있는 학문의 보고였으며,
중앙선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최대 규모의 미술관이었다.
그는 특히 '시속 60킬로미터 제한' 표지판을 좋아했다.
그것의 표지판말은 '평온'이었다.

하지만 표지판말이 '행복'인 어린이보호, 여기서부터는 차량금지 구역입니다,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행복'이란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 뿐더러,
자신이 어렸을 때 빈민가를 거닐다가 꼬마인간이 침을 흘려
자신의 팔이 부식된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Teach-CE를 균열로 안내한 'GUD-C'는 작게 목례를 한 다음,
바퀴를 털털 거리며 산을 내려갔다.

Teach-CE는 집게 손으로 균열을 크게 벌렸다.
안에는 사진에서 보았던 빨간 조형물이 우뚝 서있었다.
그는 그것을 대학 기자재실에서 몰래 가져온 분석기 'STU-D'에 넣고 스위치를 올렸다.
분석기가 지이잉하는 소리와 함께 모니터로 문자들을 출력했다.

"미확인 생명체"

"7000년대 도감에 없음"
"6000년대 도감에 없음"
"5000년대 도감에 없음"
"4000년대 도감에 없음"

Teach-CE는 실망한 눈으로 빨간 조형물을 바라보았다.
프리젠테이션할때나 사용하는 포인트 레이저가 자기도 모르게 켜졌다.
뭔가 넋놓고 있거나 우울한 기분을 느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하지만 정확히 2.432124초 뒤에 그의 마음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이걸로 논문을 써서 학계에 보고하자! 왜 이 생각을 못했지?
이건 분명 새로운 표지판일거야. 아마도 자생 능력을 가진..숨을 쉬는..

그의 CPU가 멋대로 동작하면서 자신이 대학교 명예로봇으로 진급되어
티비인터뷰에 출연하는 모습을 망막에 출력하기 시작했다.

그는 주변을 탐지하는 안테나를 올린 채 빨간 조형물을 몰래 퍼냈다.
그것의 빨간 색감이 Teach-CE의 머릿속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어릴 적부터 빨간색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빨간색의 의미는 '금지, 성인'이었다.

조형물을 최대한 빨리 자기의 사무실로 옮기려면
인간노예들이 몰려있는 빈민가를 지나야만 했다.
그는 왠지 꺼림칙했지만, CPU가 출력하는 명예교수로봇 학사모가
지름길로 가길 부추겼다. 그는 자신의 다리에 달린 모터를 '터보'수준으로 올려놓고
빈민가에 난 작은 골목길로 들어갔다.

그가 골목 모퉁이를 빠른 속도로 지날 때,
옆에서 저급 로봇용 오일을 팔고있던 인간노예 하나가 눈을 크게 떴다.

'저것봐! 장미다!'

노예는 주변에 누가 듣기라도 하는 듯 이렇게 외쳤다.
집게 손으로 조형물을 쥐고 달리던 Teach-CE는 노예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안테나를 떨었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인간노예가 자신에게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을 감지했다.
인간노예는 그가 '장미'라고 부르는 물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턱밑으로 침을 흘렸다.
그걸 보던 Teach-CE는 또다시 어릴적 생각이 나면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노예가 침을 흘리는 행동이 무엇때문인지 알려주는 지식이 프로그래밍되어있었다.

"'장미'라고 부르는 이게 너희들의 식량이냐?"

Teach-CE는 풀이 죽었다. 명예교수로봇이라는, 꿈에그리는 목표도
한낱 휴지조각이 되어 그의 망막에서 흩어졌다. 그는 장미를
얼마전에 산 휴대용 소각로에 넣었다. 그것은 자신의 배밑에 장착되어 있었다.

스위치를 올리자 '장미'는 불에 타올랐다.
화르륵 거리는 불의 소리와 함께 인간노예가 오열하는 울부짖음도 같이 들렸다.

장미는 1.81351초도 안되서 재가 되었고,
소각로의 뚜껑을 열어 바람에 날려보냈을 때
장미꽃잎의 타지않은 귀퉁이 한조각이 인간노예의 얼굴에 붙었지만,
그는 전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공감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22,450개(22/1123페이지)
RHkorea : 자게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22030 Reckoner 커버 해봤써요 [8] JUSTT 5469 2009.10.24 15:09
22029 라됴헤드에게 영향 준 밴드.avi [5] JUSTT 6339 2009.10.22 20:32
22028 23일 취소, 30일 번개 제안 [1] Rayna 6230 2009.10.21 23:29
22027 machinarium 게임 해보셨나요? Sartre 6145 2009.10.21 22:10
22026 디스트릭트 9 보셨나요? [6] Sartre 6251 2009.10.21 01:47
22025 ufc in oz!! Radiohead 6365 2009.10.17 22:56
22024 영화보셨나요?^^ [2] 아도리 5327 2009.10.17 15:04
22023 11월 24일 신촌에서 mika공연 [14] Radiohead 6620 2009.10.16 22:31
22022 23일 모임 제안 [9] Rayna 5418 2009.10.16 01:07
22021 보테기능 [5] Radiohead 5915 2009.10.14 20:04
22020 그러니까 우호님 [2] Gogh 5605 2009.10.12 12:26
22019 탐형 신곡 [5] Radiohead 5803 2009.10.10 20:29
22018 에미상 시상식 보셨나요ㅋㅋ [1] St.summer 5476 2009.10.09 01:28
22017  BBC Radiohead Story [3] 나나 7146 2009.10.06 21:55
22016 Let down 뮤비가 진짜 있나요? [2] Sartre 5506 2009.10.06 12:55
>> 장미의 이름 [2] 캐서린 5744 2009.10.03 21:35
22014 라디오와 줄리엣 여친이랑 같이 가서볼만한가.. [3] 조빌리 5267 2009.10.02 01:22
22013 [뻘글] 모두들 즐거운 추석되셔요 [3] 뉘른베르크 5248 2009.10.01 21:31
22012 서명 부탁드려요. [3] 스캇 4982 2009.10.01 01:15
22011 근황 [6] 우호 5274 2009.09.29 21:19
일반 로그인
소셜 로그인
아이디/비번 기억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서 로그인하시면 별도의 로그인 절차없이 회원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많이 본 글
댓글 많은 글
추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