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노동, 고양이, 핸드폰, 돌.

담요 | 2008.11.10 00:40 | 조회 4750 | 공감 48
회사에 갈 수 있는 유일한 직통 버스 6711의 노선이 변경되었다.
듣도 보도 못한 다른 번호의 버스와 통합되면서 607이 되었다.
이로 인해 배차 간격이 족히 30분은 되는 이 버스의 배차 간격이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좋은 뉴스였지만, 그 땐 몰랐다.
노선이 변경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서, 그 버스는 더 이상 내가 있는 곳을 거쳐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미꾸라지 같은 놈.









"오늘은 짐을 좀 날라야 해."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대수롭지 않게 승낙했다.
전에 쓰던 사무실이 새 주인을 찾게 되면서 그 곳에 방치해둔 짐을 빼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현재의 사무실은 4층, 이전 사무실은 2층, 두 곳 모두 애석하게도 승강기가 없다.
짐을 나를 차는 카니발이었는데,
애석하게도 짐은 1.5톤 용달차가 어울릴만한 양이었다.
이 날 나는 하루 종일 짐을 들고 2층과 4층을 오르락 내리락 해야만 했고,
팔과 다리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어디가서 이만큼 노가다 뛰어도 일당 10만원은 받겠다, 씨발!'
이 생각만이 온전한 내 것이었다.









여자 친구가 자기 학생이 키우게 된 고양이라며 멀티 메일을 보내주었다.
사진 여러장과 동영상 여러개.
평소 고양이에게는 별다른 애정도, 관심도 없는 여자 친구지만,
그 고양이는 그런 여자 친구에게도 충분히 어필할만 했다.
아주 작고 작은 새끼였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에 대한 답장으로 나의 감정을 여과없이 전달하기에 이르렀다.

'아, 완전 귀엽다. 최고야. 어쩜 좋아. 나도 키우고 싶다.'

그리고 이 메세지는 정말 곧이 곧대로 여과없이 전달된 모양이다.
몇일이 지나고, 여자 친구가 내게 통보하기를,

"전에 그 고양이 자매가 하나 있는데 그거 내가 달라고 했어. 자기 줄께."

꽤나 당혹스러운 통보였다.

"에? 진짜? 나보고 키우라고? 내가 그걸 어떻게 키워?"

"왜? 키우고 싶다며? 난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니, 그렇긴 한데, 너무 갑작스럽잖아. 게다가 우리 집에 돌봐줄 사람이 없는 걸.
일단 부모님은 키우는 거 자체를 반대하실 거고, 나는 회사 갔다가 학원 갔다가..."

"그럼 어떻게 해? 이미 말 다 해놨는데... 그 고양이 원래 다른 곳에 있었는데
내가 말해서 일부러 가져온 거란 말이야."

망치로 머리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를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일을 벌린 여자 친구를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쉽게 OK를 할 만한 입장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여차 저차, 나는 키워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렇지만, 부모님, 특히 엄마의 반대는 생각 이상으로 거셌고,
나는 엄마에게 온갖 욕설과 협박을 들어야만 했다.

"고양이 데리고 오면, 그 날로 너랑 고양이랑 둘 다 쫓겨날 줄 알아!"

아직까지도 우리 집의 실세는 엄마였고, 나는 여전히 약자일 뿐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나는 엄마에게 항복하고, 여자 친구에게 굽신거리고,
다시 여자 친구는 그 고양이 주인에게 굽신거려서 모든게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는데, 참 피곤한 여정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여기에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까.
특별한 주제도 없는 일들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 이 글을 왜 쓰고 있는 걸까.
마지막으로 이 곳에 온게 언제였더라.
꽤 된 것 같은데.









핸드폰 구입 두달 만에 핸드폰을 분실했다.
24개월 약정이었으니까 22개월의 할부가 남아 있는 셈이다.
쓰지도 못하면서 이 돈은 꼬박 꼬박 내야 되는 셈이다.
일단은 임대폰을 쓰기로 했는데, 어째 나 고등학교때 쓰던 핸드폰만도 못한 거 같다.
임대폰에 기대 따위는 하지 않았지만, 이건, 나를 두 번 울리는 짓이다.
핸드폰은 참 어처구니 없게 잃어버렸다.

퇴근 후 학원으로 가는 버스에서 문자를 보내다 보니 내려야 할 곳이었다.
급하게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 튕겨져 나가듯 몸을 일으켜 곧장 버스에서 내렸는데,
내리자마자 전화를 하려고 주머니 안을 더듬었는데,

어라, 핸드폰이, 없네.

곧장 공중전화기로 달려가 전화를 걸었는데,

어라, 전화를 끊어버리네.

괜찮다. 괜찮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잖아.
그 때도 별 일 없이 종점의 사무실에서 핸드폰을 찾을 수 있었어.
곧장 다음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서, 사무실로 찾아가, 사정을 얘기했더니,

"하, 이거... 몇 번 버스에서 잃어버렸는데? 언제? 그러니까 몇시냐고? 없네. 없어!"

어라, 이 양반이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반말이. 확, 그냥.
,
,
,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

분실 신고를 하고, 여차 저차, 위치 추적.
누가 가져가 봤자 부천이겠거니 했는데 서초동이란다.
그 후로도 수십번 전화를 해봤는데, 이 놈이 전원을 껐다 켰다 하면서 안받는게 아닌가.
문자로 사정 사정해봐도 연락이 없다.
통화내역을 뽑아봤는데도 깨끗하다.

그렇게 핸드폰은 자취를 감췄다.









둘째 조카의 돌이었다.
나보다 한살 어린 친척 여동생이 돌잔치때 못온다며 누나에게 미리 10만원을 줬단다.
누나가 "너는 외삼촌이니까, 더 큰 걸 기대하겠어" 라고 진심인지 장난인지 모를 선포를 했지만,
10만원만 뽑았다.
4시 부터 가서 짐 나르고, 세팅하고, 행사 과정을 캠코더에 담고,
회사에서 노동의 대가로 팔과 다리를 지불한게 불과 이틀 전이었다.
별로 무겁지도 않은 캠코더였지만, 몇시간을 선 채로 들고 있자니, 지옥이었다.

'이 정도면, 10만원,,, 안내도 되지 않을까?'









'나 이제 자야되지 않을까?'









KTF 네온사인폰(U-300K) 습득하셨거나, 주변에 습득하신 분이 있다면,
좀 도와주십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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