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바위보

캐서린 | 2008.09.18 12:40 | 조회 4245 | 공감 28
내용은, 말하자면 간단한 것이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면 판돈의 두배를 갖는 내기

"네게 가장 소중한 걸 걸어"
상대는 손바닥을 펼쳐서 내 얼굴 앞에 들이대며 말했다
그 속에 새겨진 기하학적 문양의 문신이 주름 잡히며 꿈틀거렸다
말하자면,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은 내기였다

"저예요"

저 멀리서 그녀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5평 남짓한 어둠 속에서 백열등이 힘겨운 빛을 발했다
남자가 손을 꽉 말아쥐고서 자신의 입술에 댔다
주먹 쥔 손이 짓궂은 조소처럼 무디게 보였다

임신 5개월의 그녀는 무작정 날 따라 상경했다
테스터기로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은행 통장의 잔고가 쇠락했던, 눈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담보가 저라구요, 가위바위보에서 지면"
그녀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때마침 잘됐네, 그쪽에서 가위바위보 신호를 주면 되겠어"

남자는 귀퉁이에 설치된 노끈에 자신의 손목을 묶었다
그녀가 남자를 따라서 요동치는 내 손목을 붙잡고서 노끈을 동여맸다

게임은 단판이었다
인맥을 전전하며 모은 돈 150만원이
나와 남자의 사이에 애처롭게 놓여있었고
지금 내 주머니엔 칼이 들어있다

"자 이제 시작해"
남자가 담배 한모금을 길게 들이쉬고서 말했다

식은 어둠 속은 어떤 열기도 들여보내주지 않을 듯 맹렬하게 냉기를 뿜어댔다
추워서 몸이 떨리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테이블을 리드미컬하게 두드리며 흔들리는 내 손만큼은 멈추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녀가 산고의 고통처럼 입을 열었다

"가위.."

머리가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가위와 바위와 보들이 표류선을 타고 물회오리쪽으로 빨려들었다

"바위.."

같이 올라가면 어떻게 해서든 성공하겠다고 말했다
행복하게 해주마고, 나는 일부러 환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보"



나는 주먹을 냈다
'냈다'라는 게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그녀의 신호조차도 듣지 못한 체
그저 당면한 일을 얼른 당면하고 집에 가서 쉴 생각만 가득했다
떨림을 이겨보고자 주먹을 쥐었을 땐 이미 게임은 끝나있었다

남자는 가위, 나는 주먹

300만원을 쇼핑백에 담았을 때, 남자는 손목에 생긴 노끈의 생채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또 올거지?"

나는 아무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녀의 부른 배와 남자의 손을 한번씩 번갈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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