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담요 | 2004.07.12 17:01 | 조회 405 | 공감 15
100일 위로 휴가라는 것이 있다.
입대한지 100일 즈음이 된 군인에게 허락된 4박 5일의 자유를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난 입대한지 100일 즈음이 된 군인이다.

집에 도착하니 어느덧 시계는 12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익숙한 거리, 익숙한 건물들...
심장을 움켜짜는 듯 고통스러운 반가움이었다.
눈시울이 촉촉하게 젖어버린 나의 엄마.
내가 집을 비운 동안 나의 컴퓨터는 A/S라는 명목 하에 깨끗히 포멧된 상태였다.
나의 이메일 계정들 또한 3개월 동안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깨끗히 포멧된 상태였다.
딱히 이유를 설명할 방법은 없지만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일 즈음의 시간들.
하지만 그리 긴 시간은 아니였나보다.
나는 금새 군대가 아닌 이 곳에 익숙해졌으니까 말이다.
처음 자대 배치를 받고 내무실에서 TV를 접했을때,
불과 5주의 시간 동안이었지만 훈련소에서의 "다", "나", "까" 언어에 익숙해져 있던 나로써는
TV 속 주인공들의 "요" 언어가 굉장히 어색하고 거슬렸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소대장님께 전화를 걸어놓고서 대뜸 경례 구호가 아닌 "여보세요"라는 말이 튀어나온 걸 보면 말이다.

집에 도착하자 마자 나는 전투모와 전투복을 벗고, 샤워를 하고,
예전에 입던 이른바 "사제 옷"을 꺼내어 몸에 걸쳤다.
그런 뒤 거울에 서서 나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매일 보는 얼굴임에도, 이유 모를 어색함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짧은 머리와 검게 탄 얼굴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옥상으로 올라갔다.
담배를 입에 물고,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짝다리를 짚은 채 하늘을 올려다 보며 그렇게 잠시 서 있었다.
역시나 이유 모를 어색함에 웃음이 나왔고,
손을 주머니에서 빼고, 두다리를 곧게 편 채,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아직까지도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하지만, 나의 이런 어색함도, 이 고통도... 머지않아 익숙해지리라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그래야만 한다.



오랜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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