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글-술에 관하여

소금비누 | 2003.10.12 17:15 | 조회 4587 | 공감 94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취기가 오르면 그 기운에 더 마시게 되는 술은
동서양의 허다한 예찬론자들을 양산해낼 만큼
독특한 마력을 지닌 '특별한 음식'이다.
지구상에 인류가 출현한 이래
가장 오래된 기호 식품인 술이 중단 없이 그 역사를 지속해 온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마력과 무관치 않은 일.
건강에 해롭다 이롭다의 논쟁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백해무익'을 주장하지 못하는 것은
그 만큼 술에는 다른 음식이 가지지 못하는 효용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술은 인간 관계를 부드럽게 해주고
대화를 부드럽게 만드는 '사교의 명약'으로 인정받아 왔다.
'술이 떨어질 무렵 친구도 떨어진다'는 말은
이를 가장 절묘하게 표현한 러시아의 속담이다.

혼자서 술을 마시는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처량한 장면.
자고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술이란 여럿이 함께 해야
맛과 멋이 나는 것으로 여긴다.
그렇지 않다면 권주사(勸酒辭)가 필요없다.

미국인들은 잔을 비우길 권하며 '보텀스 업'(bottoms up)을 외친다.
우리와 중국, 일본인들의 건배(乾杯)와 같은 풍습.
술맛을 내려고 큰 유리잔 안에 토스트 한 조각을 넣었던 데서 유래한
토스트(toast)나 치어스(cheers)도 많이 쓰인다.
프랑스인들은 '당신의 건강을 위해'라는 뜻으로
'아보트르 샹테'라고 한다.
바이킹의 후손인 북구에서는 스콜(건강)!

하지만 상대가 친구이건 웃사람이건,
술자리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격언이 있다.
바로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過猶不及)는 옛말이다.
원래 술은 술을 부르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이를 이기지 못하면 술에 사람이 먹히고 만다.
중간에 도망가기, 잠들기, 남의 약점을 꼬집고 시비걸기, 옷벗기, 울기, 허풍떨기, 깨부수기, 물어뜯기….
술버릇이 나쁜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 취급을 못받는다.

문제는 이런 추태가 '상습범'들만의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는 누구라도 연출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술주정은 술에 강하고 약한 것과 상관없다.
이런 장면은 오히려 술을 자신하는 이들에게서 더 빈번히 관찰된다.

주도(酒道)란
바로 이같은 추함을 막기 위해 몸으로 익혀야 할 예절이다.
옛 사람들은, 술은 어른 앞에서 배우라고 했다.
술을 가르친다는 것은
못마시는 술을 억지로 먹게 한다는 뜻이 아니고,
술자리에서의 몸과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오경의 하나인 예기(禮記)는
하늘이 낸 술과 음식을 함부로 다루지 말 것과
아름다운 모임을 흐뭇하고 절도있게 즐기도록
향음주례(鄕飮酒禮)를 적고 있다.
관례 혼례 상례 제례 상견례와 더불어
유가의 여섯가지 예에 속하는 예절인 향음주례는 중국의 것이지만,
구한말까지 전국 360개 향교에서 1년에 한 차례씩 치러졌다.

향음주례는 의관을 갖춘 주인이
손님의 집을 미리 찾아가 초청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일 손님을 대문에서 맞은 주인은 손님들에게 먼저 잔을 권하고,
이어 그들이 따라주는 술을 받는다.
주인은 반드시 술잔 하나로 술을 돌려가며 권하지만,
잔이 바뀔 때마다 잔을 물에 씻는다.
이렇게 엄격한 가운데서도 음악연주로 흥을 돋우길 빼놓지 않는다.

향음주례의 구구한 절차는 요즘의 사정과 어울리지 않는 점이 많아
일일이 따를 방도가 없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상대방에 대한 공경심과 청결심, 절도는
난장판으로 끝나기 일쑤인
요즘의 우리 술자리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옛 중국에서는 군주가 신하를 술자리에 부를 때는
상 맨 위에 물이 든 통을 갖다놓았다고 한다.
'현주'(玄酒·무술)라 불리는 이 맹물은,
물처럼 마시되 취하지 않도록 마음을 가다듬고
술의 고마움을 알고 마시라는 의미다.
예전처럼 어른 앞에서 술을 배우는 일이 자취를 감춘 오늘날,
'술 권하는 사회' 대한민국의 술꾼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당신은 애주가인가? 색주가인가? 낙주가인가?

아니면 술을 싫어하는 염주가인가?

당분간 절제하는 절주인가? 금주가인가?

술을 마시는데도 등급이 있느니

시인 조지훈님이 쓰신 주도(酒道) 18단계를 한 번 보자.

대학교때 책에서 읽은 것이 기억나서 찾아보고 옮긴다.

각자 술마시는 목적이나 버릇, 취향과 양 등등에 따라

님께서 9급부터 9단까지의 등급을 정하셨다.

10단계(초단)부터는 단의 명칭(단위)을 부여했다.

9급. 불주(不酒) : 될 수 있으면 안마시는 사람. 술자리를 슬그머니 피하는 사람

8급. 외주(畏酒) : 술을 겁내는 사람.

7급. 민주(憫酒) :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

6급. 은주(隱酒) : 돈이 아쉬워 혼자 숨어서 마시는 사람.

5급. 상주(商酒) : 이익이 따를때만 계산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

4급. 색주(色酒) : 성생활을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3급. 수주(睡酒) : 잠을 자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2급. 반주(飯酒): 밥맛을 돋우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1급. 학주(學酒) : 술의 진경을 배우는 사람. 주졸(酒卒)의 단계.

초단. 애주(愛酒) : 취미로 술을 맛보는 사람. 주도(酒徒).

2단. 기주(嗜酒) : 술의 진미에 반한 사람. 주객(酒客)

3단. 탐주(耽酒) : 술의 진경을 체득한 사람. 주호(酒豪)

4단. 폭주(暴酒) : 주도를 수련하는 사람. 주광(酒狂)

5단. 장주(長酒) : 주도 삼매에 든 사람. 주선(酒仙 = 이백이 생전에는

여기에 속했으나 수로 인하여 죽었으매 9단으로 추존함)

6단. 석주(惜酒) :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 주현(酒賢).

7단. 낙주(樂酒) :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 주성(酒聖)

8단. 관주(觀酒) :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이미 술을 마실 수 없는 지경

에 이른 사람. 주종(酒宗).

9단. 폐주(廢酒) : 일명 열반주. 술로 인해 다른 세상으로 떠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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