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끄적인 몇자

캐서린 | 2003.07.29 23:09 | 조회 2355 | 공감 0

어렸을 적에 영어원어로 된 애니메이션을 한편 우연찮게 본 적이 있다.
슈퍼맨, 원더우먼, 배트맨, 각자 영화 한편씩을 차지하고 있는 비중의 캐릭터들이 한데 모여서 벌이는 일종의 서비스 차원의 그림 쇼였는데, 난 괜히 그 때 부아가 올라서 10분도 안되어서 영상에 눈을 떼어 버렸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가 사주신 에일리언 인형의 머리를 찍찍 누르며 입 속의 입이 튀어나오는 걸 재미있게 즐겼다.

시간이 지나서 올해, 젠틀맨 리그가 개봉했다.
만화영웅과 소설주인공, 그림과 실사 의 차이점 빼고는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위의 영화들을 보면서 난 아쉽게도 '환영'보다는 '환멸'을 느꼈다. 헐리웃 영화의 상업성에 질색했다고나 할까. 지킬박사와 하이드, 할로우맨, 수많은 드라큐라, 그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캐릭터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그 캐릭터영웅들은 자신들만의 스크린 안에서 철저하게 자신만을 뽐내며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었는데, 지금은 돈 가방에 눈이 먼 제작자들이 새로운 캐릭터 창조에는 관심 없고 단지 그들을 한 컵에 모은 다음 뒤적뒤적해서 '자, 전혀 새로운 영화가 한 편 개봉했습니다!' 하고 현란한 CG빼고는 다를게 없는 식상한 캐릭터영활 내놓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한숨이 뿜어져 나온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헐리웃 영화판이 댄 거울 같아 보인다.
한국영화 발전한다 발전한다 말이 많지만 속에 썩고 있는 병폐가 작게 꿈틀거리며
장래의 태동을 꿈꾸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벌써부터 징조가 보이고 있는 것이,
많은 제작자들이 예의 사람들처럼 한번 날렸던 작품의 속편 만들기에 열중하며,
제대로 창작된 시나리오보다는 남이 미리 써 둔 인터넷소설을 재미있게, 싸게 각색하는 것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점이다. 감독 지망생들은 어떠한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들의 머릿속엔 모두 '어떻게 하면 야하고, 파격적이고, 웃긴'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에만 핏대를 세우고 있으니까. 그러니 오아시스, 살인의 추억 같은 영화들이 너무 크게 부각되고 그로 인해 평가 역시 커지는 것이다. 수많은 모래알 속에서 보석 찾는 건 쉽고 수많은 가짜 보석들 중에서 진짜 보석 찾기는 어려운 식이다.
배우들 역시 '영화 한편 대박 터뜨려서 일류 스타 되자'에만 눈이 멀어 있다.
한때 좋아했던 설경구가 어느 티비쑈에서 전화로 헐리웃 간다며 뻥치는 차승원에게
'야 무조건 가 무조건. 액수가 우리랑 차원이 달라'
라고 말하는 걸 보고 어느 정도 실망을 했었다는. 뭐, 현대인들의 욕심의 관심사는 모두 '돈'이긴 하지만서도,
웬지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영화판이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 이런 문제는 관객들의 영화 안목 수준에도 크게 영향을 끼칠 것이다.
뭐, 반면에 조금씩 영화 보는 즐거움을 제대로 즐기는 사람들도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ㅡ
이렇게 말한다고 내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냐. 라고 물으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나 역시 예쁘고 멋진 것에만 눈길을 돌리고, 교수나 평론가들이 '이거 꼭 봐'라고 추천하는 작품들에는 손조차 건네지 않고, 인권영화제보다는 부천판타스틱 영화제에 더 환호를 보낸다. 오로지 자신만의 눈으로만 모든 작품을 평가하고 보기를 희망할 뿐이다. 그러니 괜시리 나 자신이 초라해진다.
휴, 이렇게 한탄만 해봤자 개선되는 점은 있을까 하면, N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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