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원더풀 데이즈 보신분

이두연 | 2003.08.13 22:56 | 조회 2394 | 공감 0
적어도 제 생각으로는 기대에 비해 실망이 컸던 작품이었습니다.
스토리 구조의 치밀함은 실종되어 있었고, 인물들의 캐릭터 역시 전형성을 탈피하지 못했습니다. 또 그만큼 관객에게 호소력을 잃게 되었죠.
많은 분들께서 기술적인 부분을 칭찬하셨는데 이 부분에 관해서도 저는 많은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이 훌륭하다'라는 말은 시각적 요소의 기술적인 정교함의 정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술적인 부분이 영화 전체의 극의 분위기와 메시지, 그리고 미장센에 얼마만큼 봉사하는냐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말입니다.
일차적이고 피상적인 면만을 봤을 때, '원더풀 데이즈'에 등장하는 일련의 시각적 효과는 매우 정교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시각적 효과가 극의 분위기, 메시지, 미장센 중 어느 하나에도 속하지 못하고 상영시간 내내 부유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또한 어떤 부분에서는 스토리의 보완과 구체화를 위해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이미지들을 '보여주기' 위해 스토리와 텍스트를 이끌어나가고 희생시키는 면이 많았던 것 같았습니다.
이 점을 애니메이션 '인랑'과 비교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인랑' 역시 기술적인 면에서 실사를 추구한 사실적인 영상의 애니메이션입니다. 이 작품은 '원더풀 데이즈'와는 달리 기술적으로 정교하고 사실적인 영상들이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메시지 및 미장센에 비교적 철저하게 봉사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 고뇌와 갈등에 차있는 주인공 '후세'가 수도물로 손을 씻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때, 그 실사 처리된 수도꼭지가 숏의 주인공으로서 보여지게 되는데, 이는 계산된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수도꼭지는 낡았고 군데군데 녹이 슬었으며 어두운 조명으로 인해 음침한 느낌을 줍니다. 이러한 어두운 질감들은 실사 처리로 인해 관객들에게 더 사실적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이 장면은 인간과 늑대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후세 내면의 어두움, 그리고 극 분위기의 음습함을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수도꼭지라는 작은 소품 하나가 숏의 초점, 장면의 조명, 자체의 칙칙한 질감과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분위기, 메시지, 미장센의 모든 요소에 치밀하게 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술적인 정교함은 이를 극대화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더풀 데이즈'에는 기술적인 화려함만이 있을 뿐, 그 안에 극을 설명해주는 세밀한 함의가 없습니다. 언덕에서 높이 점프하는 바이크의 하부를 비추면서 그 기계구조를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장면이나, 햇빛을 받으며 떨어지는 탄피를 잡아내는 장면 등등에는 정교한 기술적 치장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면들이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흐름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허술한 스토리에 화려하게 치장한, 남발하는 영상 이미지들만이 서로 겉돌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면 때문에 저는 기술적인 면에도 합격점을 줄 수가 없습니다.
영화 전체가 우리에게 주려고 하는 주제의식이 부재한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에너지 전쟁 이후에 살아남은 인간들, 그 속에 존재하는 차별과 배제의 논리, 그리고 오염물질을 끊임없이 생산해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에코반의 시스템 등 인류의 미래에 대한 음울한 상상력과 묵시록적 세계관을 그려낸 것은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소재에 대한 깊은 사유를 통해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려하기보다는 그것들을 철저하게 배경으로만 전락시킨 채, 해묵은 삼각관계와 액션 활극을 보여주는 데에만 치중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예로 영화 '레인 오브 파이어'를 들 수 있겠죠.
종합적으로 봤을 때, 찬물을 끼얹는 말일지 모르겠으나 '원더풀 데이즈'를 한국 애니메이션 발전의 지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제 생각을 대략적으로 썼는데요, 나중에 비디오로 나오면 다시 보고 더 섬세한 평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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