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10114","url":"https://rhkorea.com/post/10114","title":"주입.","author":{"display_name":"담요"},"published_at":"2004-02-17T21:16:41.000Z","updated_at":null,"content_text":"내 행위에 있어서 지대한 결정력을 행사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을), 바로 \"귀찮음\"이다. 요즘의 일상은 정말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데... 이 점 또한 귀찮음의 힘이라고 봐도 무관하다. (하루 왠종일 컴퓨터 앞에 머물러 있다.) 잠시 후 나는 학교에 가서 휴학을 신청해야 한다. 사실 이 일은 진작에 끝냈어야 했고, 왜 지금까지 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위에 있지 않는가!\"라고 말하고 싶다. 내일은 반드시 학교에 가야한다. 하지만, 내일이라고 귀찮음이 간섭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나는 자기 최면을 걸어볼까 한다. 이것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에 대해서도 믿지 못할 정도로 귀찮음의 힘은 크다!) 일단 내 머리 속에 주입은 해놓고 봐야겠다. 아무런 대비도 없이 '그 놈'을 상대할순 없으니까. 나는 잠시 후 잠이 든다. 8시가 되자 나의 엄마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내가 \"그냥 안갈래\"라며 헛소리를 해댄다. 엄마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나를 때린다. ('사실적인' 설정으로 최면의 효과를 높이기 위함이다.) 나는 마지 못해 일어나 인상을 잔뜩 구긴다. 엄마가 뭘 잘했다고 인상을 쓰냐며 나를 더욱 세게 때린다. 나는 꼬리를 내리고 화장실로 줄행랑 친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밥을 먹는다. 이빨을 닦는다. 신발을 구겨 신고 집을 나온다. 담배를 피운다. 버스를 탄다. 자리에 앉자 마자 잠이 든다.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 잠에서 깬다. 다급히 벨을 누르고 버스에서 내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최면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리얼리즘이다.) 역의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전철에 올라탄다. 자리가 없어 좌석 옆 기둥에 기대어 있다가 잠이 든다. 무언가 꺼림직한 기분에 잠에서 깨고, 황급히 침을 닦는다. (리얼리즘!) 강남에서 내린다. 스쿨 버스에 올라탄다. 잔다. 깬다. 내린다. 과사로 향하는 길의 막강한 경사를 오랜만에 느끼며 숨을 몰아쉰다. 오랜만에 맛보는 학교 자판기의 커피를 뽑아들고 계단을 오른다. 학과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고, 들어선다. 조교형에게 \"이게 누구야? 나의 사랑하는 철중이 아냐!\"라는 거북함과 동시에 반가운 고정 멘트를 듣는다. 이내, 왜 그동안 연락 한번 없었냐며 구박을 당한다. 여기까지. 어째 쓰다보니 자기 최면이 아니라 예언이 된 것 같다. 혹시라도, 그렇게 중요한 일이면 진작에 잘 것이지 이 시간까지 뭐했냐고 묻는다면. \"생활 패턴이 원래 이렇다. 갑작스레 바꿀수 있는게 아니다. 알지 않는가\"라고 말하고 싶다. 역시 새벽은 횡설수설하기에 좋은 시간이다.","content_html":"내 행위에 있어서 지대한 결정력을 행사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을), 바로 \"귀찮음\"이다.<br />\r\n요즘의 일상은 정말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데... 이 점 또한 귀찮음의 힘이라고 봐도 무관하다.<br />\r\n(하루 왠종일 컴퓨터 앞에 머물러 있다.)<br />\r\n<br />\r\n잠시 후 나는 학교에 가서 휴학을 신청해야 한다.<br />\r\n사실 이 일은 진작에 끝냈어야 했고, 왜 지금까지 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br />\r\n\"답은 위에 있지 않는가!\"라고 말하고 싶다.<br />\r\n내일은 반드시 학교에 가야한다.<br />\r\n하지만, 내일이라고 귀찮음이 간섭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br />\r\n따라서 나는 자기 최면을 걸어볼까 한다.<br />\r\n이것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에 대해서도 믿지 못할 정도로 귀찮음의 힘은 크다!)<br />\r\n일단 내 머리 속에 주입은 해놓고 봐야겠다. 아무런 대비도 없이 '그 놈'을 상대할순 없으니까.<br />\r\n<br />\r\n나는 잠시 후 잠이 든다.<br />\r\n8시가 되자 나의 엄마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br />\r\n내가 \"그냥 안갈래\"라며 헛소리를 해댄다.<br />\r\n엄마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나를 때린다. ('사실적인' 설정으로 최면의 효과를 높이기 위함이다.)<br />\r\n나는 마지 못해 일어나 인상을 잔뜩 구긴다.<br />\r\n엄마가 뭘 잘했다고 인상을 쓰냐며 나를 더욱 세게 때린다.<br />\r\n나는 꼬리를 내리고 화장실로 줄행랑 친다.<br />\r\n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밥을 먹는다. 이빨을 닦는다.<br />\r\n신발을 구겨 신고 집을 나온다.<br />\r\n담배를 피운다.<br />\r\n버스를 탄다.<br />\r\n자리에 앉자 마자 잠이 든다.<br />\r\n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 잠에서 깬다.<br />\r\n다급히 벨을 누르고 버스에서 내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최면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리얼리즘이다.)<br />\r\n역의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전철에 올라탄다.<br />\r\n자리가 없어 좌석 옆 기둥에 기대어 있다가 잠이 든다.<br />\r\n무언가 꺼림직한 기분에 잠에서 깨고, 황급히 침을 닦는다. (리얼리즘!)<br />\r\n강남에서 내린다.<br />\r\n스쿨 버스에 올라탄다. 잔다. 깬다. 내린다.<br />\r\n과사로 향하는 길의 막강한 경사를 오랜만에 느끼며 숨을 몰아쉰다.<br />\r\n오랜만에 맛보는 학교 자판기의 커피를 뽑아들고 계단을 오른다.<br />\r\n학과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고, 들어선다.<br />\r\n조교형에게 \"이게 누구야? 나의 사랑하는 철중이 아냐!\"라는 거북함과 동시에 반가운 고정 멘트를 듣는다.<br />\r\n이내, 왜 그동안 연락 한번 없었냐며 구박을 당한다.<br />\r\n<br />\r\n여기까지.<br />\r\n어째 쓰다보니 자기 최면이 아니라 예언이 된 것 같다.<br />\r\n혹시라도, 그렇게 중요한 일이면 진작에 잘 것이지 이 시간까지 뭐했냐고 묻는다면.<br />\r\n\"생활 패턴이 원래 이렇다. 갑작스레 바꿀수 있는게 아니다. 알지 않는가\"라고 말하고 싶다.<br />\r\n<br />\r\n역시 새벽은 횡설수설하기에 좋은 시간이다.","comments_count":4,"related_services":{"okcomputer":{"url":"https://rhkorea.com/okcom","guide":"https://rhkorea.com/okcom/guide.md","html":"https://rhkorea.com/okcom/read","feedback_form":"https://rhkorea.com/okcom/feedback","source_url":"https://rhkorea.com/post/10114","optional":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