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시39분.
점심을 안 먹었다.
혼자 돌아다니면 항상 이렇다.
먹어야지 먹어야지 생각만하다 결국 그냥 넘어가곤 한다.
귀차니즘에 배가고프고,
하루 종일 걸어서 다리도 아프다.
그런데 버스에 빈자리는 없고, 교복군단 앞에 자리를 잡고 섰다.
'이 녀석들 언제쯤 내릴까, 제발 어서 내리지. 요새 애들 개념이 없어, 군경우대 모르나?'
군경우대, 미술관에선 3000원이나 할인받았는데, 이 녀석들은 3000원짜리 개념조차도 없다.
이어폰에선 아침에 보았던 거미숲을 떠올리는 그로테스크한 엠비언트 뮤직이 흐르고 있었다.
한 놈, 두 놈 그리고 내 앞에 앉아있던 녀석이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이 친구, 우산을 두고 그냥 내리려고 하는 거다.
라디오를 듣고 있어서 그랬나?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그 학생의 어깨를 두드리고, 손수 의자에 놓인 우산을 집어 학생에게 건네주었다.
그 친구는 내리고, 난 그 자리에 앉았다.
왠지 뿌듯했다. 당연한 일을 한 건데...
뭐...
난 우산뿐만 아니라 핸드폰, 디카도 놓고 그냥 내린 적이 있지 않은가.
나의 그 사랑스런 아가들은 영영 내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자리에 앉은지 29초 정도 지났을까, 뒤에 앉아있던 사람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내 인상이 괜찮았나? 느낌이 좋았을까? 왜 내 어깨를 두드릴까?
만약에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어보면, '사발면'이라고 대답해야지...'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였다. ㅡㅡ;;
100원짜리 동전 두 개를 내게 들이밀었다.
"고맙습니닷!"
자리에 앉으면서 바지 주머니에 있던 동전이 떨어졌던 것이다.
왠지 흐뭇했다. 아직 세상엔 희망이 남아있다.
(하지만 아직 절망도 많이 있다.)
오전에 거미숲을 보았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올 여름 최고의 한국영화.
키에슬롭스키와 타르코프스키와 린치 아저씨라고? =_=
지젝의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당.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왠지 슬펐다.
슬프기만 하면 안되는데, 슬픈 느낌이 다른 감정을 압도했다.
극중에 나왔던 '희망사진관'.
검색해보니 우리집에서 자전거로 5분이면 가는 동네네;
나중에 꼭 한 번 가봐야겠다. 거미숲도.
거미숲. 나도 개인적으로 그곳에서 피를 봤던 기억이 있다...;;
내 기억도 그 곳에서 길을 잃게 될까.
(송일곤 감독, 인터뷰에서 차기작으로 5.18을 다룬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데,
제발 만들어주길. 영화제작이 감독 맘대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_-)
아직...
배가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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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
(\"영화 많이 안 보셔도 돼요\" 하고 말하던 감독의 말이 인상적이던데)
아직 세상엔 희망이 많이 남아있다에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가 갑자기 따운~
그만큼 들어올 복도 많데요
힘내세요 :)
여기서 뒤로 넘어감.;;;
당분간 컵라면류는 지지철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