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학 친구가 메신저를 통해 말을 걸어왔다.
나의 생존 여부를 묻는 것으로써 대화는 시작되었다.



살아있냐?

어, 응. 오랜만이네

그래 오랜만이다! 어떻게 전역하고서 연락 한번 없냐?

한번은 했었잖아;;;

됐고, 이번에 송년회할건데 시간되면 오든가.

연락 못해서 미안해. 좀 봐주라.
송년회? 무슨 모임인데?

우리과 사람들 모임이지.
오빠들은 거의 다 나온다는 거 같은데, 나머지는 모르겠다.
오든지 말든지 네 마음대로 해.

거 참, 되게 쌀쌀맞네. 미안하다니까;;;
송년회는 가는 쪽으로 할께.

그러니? 그럼 계속 수고해.



사실 잊고 있던 친구였다.
내가 잘못한게 있으면 거리낌 없이 욕을 퍼붓던,
그래서 고마운 친구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미안했다.
사실 나는 이와 같은 이유로 친구들에게 섭섭하다는 소리를 곧잘 듣곤 한다.
자주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이다.
역시나 미안한 일이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생겼다.

'왜 내가 미안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었다.

연락을 안한 것은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니다.
그들도 역시 안했으므로 연락이 끊긴 것이다.
일방적인 소통이라 해도 그 것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 것은 끊어졌다고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나와 그들의 경우에는 완벽한 절단이었다.
결코 그들 또한 내게 연락을 취한 적이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어째서 질책을 하는 쪽은 언제나 그들이며,
변명과 사과를 늘어놓는 쪽은 내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다시 한번 기선제압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선빵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