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산책 - 이장욱
비가 내리자
나는 드디어 단순해졌다
당신을 잊고
잠시 무표정하다가
아침을 먹고
잤다
낮에는 무한한 길을 걸어갔다
친구들은 호전적이거나 비관적이고
내 몸은 굳어갔다
한 사람을 살해하고
두 사람을 사랑하고
잠깐 울다가
음악을 들었다
나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나의 죽음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금욕적이며
장래 희망이 있다
1968년이 오자
프라하의 봄이 끝났다
레드 제플린이 결성되었다
김수영이 죽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여전히 태어나지 않았다
비가 내리자
나는 단순하게
잠깐 울다가
전진하였다
----------------------------
요즘 빠져있는 시에요.
이상의 시 이후로 이렇게 빠져드는 시는 처음인 듯...
왠지 아레치라면 이 시를 알고있는 분이 꽤 계실 것 같아서요.
ARCHIVE


댓글 5
이상 좋아하세요? 저도 참 좋아해요.
특히 \'회한의 장\'이랑 \'공복\' 히히
전 처음보는 시;;
요즘 제가 감탄중인 신데요, 시인들의 상상력은 정말 로얄젤리예요;;
전화
서로 너무 많은 걸 지우고 말했다.
꼭 하고 싶은 말은 푸른 바닷속 같은 데 감춰두고 말했다.
봄이라서 꽃냄새 때문에 숨소리가 서로 어긋났다.
전화는 했어도 가슴이 납덩이처럼 무거워
어쩔 수 없이 골목 같은 데로 쑥 들어갔다.
구둣발로 오갔던 언어들을 물질러 의미의 불을 껐다.
가끔 전화는 무력하다.
푸른 바닷속에 잠긴 말들을 전하지 못한다.
- 최문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