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의 토론을 지켜보면서 ‘프레임’의 존재가 토론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명확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군님과 야차님, 레이나님의 주장에서 서로 자리잡고 있는 프레임의 차이가 현격하다고 생각되었고, 이것이 정돈되지 않으면 더 이상의 토론은 무의미하다고 생각되기에 주제넘게 글을 끄적이게 되었습니다.

오해를 막기 위해 일련의 사태들을 바라보고 있는 제 관점은 레이나님이 앞서 쓰신 장문의 글과 상당부분 같다는 것을 전제하겠습니다. 또한 인터넷에서의 매도와 색깔론 같은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마군님과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마군님께서 만약 그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알바라고 매도한 사람들을 원망하기 이전에,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근거들과, 근본적으로 그 현상을 발생시킨 원인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해보길 권합니다. 그것이 선동에 매몰되지 않고, 사태를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프레임’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였는데, 프레임 개념은 미국의 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가 주장한 개념으로, 그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삼인)과 <프레임 전쟁>(창작과 비평사)를 통해 알아볼 수 있습니다. 프레임은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이끌어가는 ‘틀’로써, 이를 통해 사태를 바라보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사고하게 됩니다. 이 프레임에 대해 스스로 비판적인 노력이 가해지지 않을 경우에는, 상대방의 이성적인 논박이 오히려 자신의 프레임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낳고, 결국에는 소통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에 봉착하게 됩니다. 100분 토론이 항상 결론없이 끝나는 이유이고, 진실이 여론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때문에, 프레임의 존재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그 프레임 속에서 비판과 이성이 작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태를 명확하게 바라보고, 시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것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토론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일단 마군님께서는 토론을 시도하시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프레임에 대해 비판적인 노력을 하고 계신 것으로, 혹은 앞으로 할 의지를 가지고 계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마군님께서 남기신 글을 읽고 정리한 생각들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 상황에서 마군님과 세부적인 내용들, 그러니까 광우병이 과연 위험할 것인가, (댓글에서 잠깐 언급하신) 공기업 민영화가 과연 대중의 삶을 위협할 것인가 등등에 대한 세세한 내용들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마군님의 글에서 보여지는 몇 가지 오류들 때문인데, 이것들은 팩트나 개념정립, 그리고 토론의 방법에 관한 문제이므로 이것들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외계어로 대화하는 것처럼 소통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저는, 마군님과 세부적인 내용들을 토론할 기회를 이 이야기가 정리된 다음으로 미루려고 합니다.

마군님의 글에서 네 가지 정도의 논쟁지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1. 진보-보수에 대한 관점
2. ‘법’은 어떠해야 하는가
3. 조중동을 바라보는 관점
4. 시위의 내용에 대한 관점

이상에서 4번 항목은 2번과 통할 수도 있겠으나 따로 이야기할 부분이 더 있기 때문에 묶지 않았습니다.

위의 네 가지 주제들은 프레임의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들입니다. 프레임을 통해 위 주제들에 대한 팩트와 개념들을 바라보고 유추해내는 결과가 다를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팩트를 왜곡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마군님은 프레임을 통해 팩트를 무시하거나 개념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스스로 모순에 빠지는 등의 오류를 범하고 계십니다. 이에 대해서 서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면 앞으로의 소통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되므로, 지금부터 하나하나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진보-보수에 대한 관점
- 진보와 보수의 개념은 논의되어온 역사가 길고 그것에 대한 개념정립이 어느정도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이미 레이나님의 글에서도 일부 나와있지만 ‘정치학적인 개념을 덧대어 (아주 거칠게) 설명하자면, '보수'란 이념은 일반적으로 가정과 국가, 민족과 같은 공동체 집단의 사회적/구조적 응집력을 주요한 가치로써 중시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권위'로 상징되는 공권력과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진보는 이러한 보수의 이념이 기득권층의 이익에만 복무할 수 있음을 주장하며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실질적인 권리를 중시하고 사유재산의 범위를 한정시켜 대다수 구성원들의 이익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개념이 한국사회에서는 성장, 분배라는 이분법으로 심각하게 왜곡되어 진정한 보수주의자도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둔갑시키는 기이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물론 한국사회의 전근대성으로 미루어볼 때 자유주의(경제적인 자유주의가 아닙니다)를 부르짖는 사람도 ‘한국 사회에서는 나름 진보적인’ 사람으로 판단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과연 민주당이 그런 진보적인 역할을 하고 있느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진보적이다’라고 판단하셨던 마군님의 생각은 개념의 자의적인 해석에 해당됩니다. 민주당이 군부독재기간동안에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대안세력으로 존재했으므로 너그럽게 보아 진보정당으로 쳐 줄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미 그 역할이 끝난 지금에 그들을 진보정당이라고 불러야 할 어떠한 이유도 없습니다. 한국사회가 진보하기 위한 가치들을 실현하기 위해 해야할 어떠한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들의 역할은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으로 끝난 것입니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조차 2005년 3월 29일에 CBS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한국에서 정당의 이념과 노선이라는 것은 뚜렷하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보면 둘 다(한나라당과 당시의 열린우리당) 보수정당입니다. 제대로 된 좌파정당은 민주 노동당 하나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로 민주노동당만이 진보정당이라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마군님께서 가지고 계신 진보-보수 개념은 역사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으로도, 한국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개념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완전히 틀린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한나라당과 대립하고 있으므로 진보정당 아니냐고 하신다면, 음.... 달리 할 말은 없습니다.)

2. 법은 어떠해야 하는가.
- 중간중간에 남기신 내용들로 보아 마군님께서는 법대에 재학중이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법이 왜 존재해야 하는 것인지, 왜 법률보다 헌법이 상위에 있는 개념인지는 다 알고계실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헌법은 국민의 ‘자유’와 ‘주권’을 존중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거칠게 이야기해서 ‘자유’라는 것은 개인이 주체로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거리끼지 않고 행동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민주’란 국가를 유지시키고 작동하는 정체(政體)를 국민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내용들은 대한민국을 (법에서나마) 근대국가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가 됩니다. 근대국가라는 이념이 헌법에 반영된 것이며, 때문에 헌법은 국가의 정체성을 담보하고 있는 최상위 법이 되는 것입니다.
헌법만으로는 사회구성원 개개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산발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없기에 법률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레이나님의 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법률은 헌법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으로’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집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헌법상으로 근대국가이며, ‘근대’의 이념은 어떤 것에도 억압받지 않는 온전한 주체로서의 개인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헌법과 법률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해야 함이 마땅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사회에서, 좁게는 이번 촛불정국에서 대한민국의 법률은 헌법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헌법소원을 통한 정당한 절차로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실 겁니다. 재판절차나 비용에서도 법적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며 재벌총수들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선처들을 보면 법질서라는 게 있는지 우습기만 합니다.(일본에서 기업을 수사하는 검사들은 ‘일본 경제와 검사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나중으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
법률적인 문제로만 보았을 때는 당연히 이번 촛불집회는 불법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주체됨’이라는 근대국가의 이념을 스스로 저버리는 꼴입니다. 법은 그 자체로 절대선이 아닙니다. 그것을 집행하는 주체가 신이 아닌 인간인 만큼, 인간 중에서도 기득권을 가진 인간들인 만큼 그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방향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하며, 그것이 개인의 정당한 권리를 가로막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그것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함이 마땅합니다.
님께서는 ‘인류가 출현하면서부터 자연법보다 높은 법은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뒤에서는 시위대의 ‘불법’에 대한 경찰의 ‘합법적’진압을 옹호하고 계십니다. 이는 명백한 모순입니다. 자연법의 개념은 근대헌법과는 명확하게 통하는 것으로 보기는 힘들지만 아무튼 실정법보다는 우위에 있는 개념입니다. 헌법의 영역과 법률의 영역을 혼동하는 데서 오는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법과대학의 경직된 교육체계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만, ‘법은 곧 선이다’라는 프레임에 갇혀계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한 프로파간다 앞에 얼마나 많은 희생들이 있었는지, 그것들이 극복되어온 역사적 사례들이 어떠했는지 살펴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으로 믿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책세상)라는 책을 권합니다.

3. 조중동을 바라보는 관점
- 광고중단압력이 문제가 되는 것이 어디까지인가라고 하였을 때, 해당 기업에 전화를 해서 광고 넣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해당 기업에 쇠파이프를 들고 찾아 유리창을 부수고 작업장을 가로막는 등의 물리적인 폭력이 아닌 바에야 ‘업무방해’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생각이고, 이런 활동은 ‘소비자’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활동이 아닐까 합니다. 불매운동의 일환으로서 말이지요. 기업 입장에서 광고를 철회하는 것은 조선일보에 광고를 게재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판매저조를 통한 이윤의 손실때문이지, ‘저 사람들이 우리 회사를 해코지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바라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만약 이런 행위가 문제가 된다면 조중동에서 다음에 기사를 송고하지 않는 것은 훨씬 큰 문제가 되겠지요.
중요한 것은 ‘언론’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그들이 가져야 할 태도가 어떤 것이냐는 점입니다. 언론은 팩트를 기반으로 합니다. 실제 일어난 일을 보도하며, 그들도 ‘프레임’이 있기에 논조가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명확히 있는 팩트를 무시하거나 자의적으로 끼워맞추거나, 이전에 보도했던 것을 바꾸거나, 명확한 진실에 아예 눈을 감아버리거나 하는 등의 행위는 언론의 본질을 저버리는 행위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조중동에서는 이런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으며(구체적인 사례는 아주 많이 있습니다. 조금만 검색해보시면 많이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님이 말씀하신 ‘공공복리’를 훼손하고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조중동이 진실을 왜곡함으로써 여론을 호도하고 그것이 민중의 삶을 억압한 구체적 사례는 많이 있습니다. 가까운 예로 5.18 민주화운동 당시 조중동의 태도가 그러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님께서 ‘조중동이 공공복리에 어긋날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그럴만한 근거를 가지고 계셔야합니다. 왜 조중동이 그러한 입장과 태도를 유지하는지, 그것이 과연 누구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는지에 대한 입장이 근거와 함께 명확하게 서지 않으면 토론이 불가능합니다.

4. 시위의 내용에 대한 관점
- 일단 한마디로 말씀을 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집회 가봤어요? 안가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감히 집회에 대해 가지고 계신 님의 생각은 편견 그 자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한쪽의 주장에 대한 일방적인 반영이거나, 알바로 매도당한 데 대한 반작용으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일 터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 마군님은 님을 매도한 네티즌과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어떤 형태로 폭력이 일어나고 있는지, 명확한 출처를 통해 주장해주시기 바랍니다. 님이 말씀하신 일화는 조작의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입니다. 이번 집회에서 쇠파이프가 나왔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고, 화염병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으며, 전경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시민이 군화발에 차이고, 방패에 찍히고, 곤봉으로 맞는 것은 직접 보았고, 사진으로도 보았고, 동영상으로도 보았습니다.
시위가 현재 불법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고 주장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에 과연 어떤 방식으로 대응해야 하는지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폭력은 어느 한 주체가 다른 주체를 설득과 동의가 아닌 강제에 의한 방법으로 굴복시키고자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번 촛불집회는 폭력집회가 맞습니다. 아니 폭력집회보다는 반(反)폭력집회라고 함이 정확하겠습니다. 이미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은 폭력도 이보다 더할 수 없는 폭력을 자행하고 있고, 그것에 반하는 폭력으로써 이번 촛불집회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싫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시키면 그게 폭력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쇠고기의 안전성이 명확하게 밝혀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수입을 강행하려는 것 자체가 폭력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입이 실행될 경우 소비자의 선택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벌어지고, 군인이나 학생의 경우 아예 선택권이 없는 상황에서 더욱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어떠한 안전장치도 마련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그리고 눈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넘기려고 하는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 시민은 어떻게 해야하는 것입니까?
정부에서는 폭력집회를 운운하기 전에, 자신들이 먼저 충분한 대비책을 마련하였는지, 마련했다면 국민들이 그것에 동의를 하였는지 살펴야 할 일입니다. 5년간의 행정권을 넘겨주었다 해서 그것이 절대권력인 양 착각하는 모습이라면, 어떻게든 그것을 막아내야 함이 정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법질서 확립을 외치는 것은 곧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도 이야기 하였지만 그러한 주장 속에 역사적으로 수많은 저항들에 불법의 낙인이 찍혀왔습니다. 하지만 그 저항들은 역사적으로 진보적인 성과들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그나마 추가협상이라도 하게 만들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 있었는지 우리는 돌아보아야 합니다.

5. 그 밖에
- 사례의 인용에서 명확한 출처를 밝히는 것은 토론의 기본입니다.
- 첫 번째 글의 댓글 중 “3마리중 0.1%만 검역했다. 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우려가 됩니다.
허나 광우병 환자가 3명이다. 라는 사실도 있죠?“ 라는 부분은 반박을 함에 있어 좋은 태도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앞서 말한 ‘팩트의 자의적 해석’이라는 것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광우병 환자가 3명이라는 사실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면 이러한 반박은 가치가 없습니다.


쓰다보니 글이 굉장히 길어졌습니다. 아마 스크롤의 압박으로 일독에 어려움을 가져오지 않을까 싶은데, 저의 글재주가 부족함을 탓해야 하겠습니다.

모쪼록 이 글이 마군님과의 진지한 소통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마군님의 예리한 반박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