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안에 관하여 자기 견해를 개진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사안의 쟁점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주요 용어들에 관한 개념 정립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그 사안의 발단은 무엇이었으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는가에 관한, 팩트에 기반한 정황 파악도 함께 선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단편적인 비난조의 피드백, 핀트에 어긋나는 오해들을 넘어 진솔한 의견 교류가 가능하겠지요.

제가 이런 말씀을 미리 드리는 이유는, 馬군님께서 남겨주신 글이 그 자체로 굉장히 다양한 사안들(특정 신문매체들에 대한 광고중단압력, 촛불집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그에 편승하여 '파업을 일삼는 집단들'에 대한 견해, 촛불집회 자체의 '과격시위화' 등)에 대한 문제제기를 포괄하고 있는데 반하여 각각의 사안들에 대한 정황 파악의 근거가 부실할 뿐 아니라, 조선일보가 종종 차용하는 진보-보수 프레임에 관한 개념 자체가 크게 결여되어 있는 상태에서 조선일보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입장을 표명하시면서도 그들의 논조를 글의 주요 논거로써 인용하고 계시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입니다.

1.

정치학적인 개념을 덧대어 (아주 거칠게) 설명하자면, '보수'란 이념은 일반적으로 가정과 국가, 민족과 같은 공동체 집단의 사회적/구조적 응집력을 주요한 가치로써 중시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권위'로 상징되는 공권력과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의 이념적 가치 역시 근본적으로는 '보수'에 맞닿아 있습니다. 촛불을 든 국민들이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제 1명제는 "내 아이, 내 가족에게 광우병 위험을 내포한 쇠고기를 먹일 수 없다"는 것이며, 이렇듯 민감한 사안들을 정부는 반대여론을 철저하게 배제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한 뒤 '대국민 담화' 정도로 변명하는 수순을 밟아왔다는 '팩트'에 그 분노의 근원이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조선일보나 중앙, 동아, 한국경제/매일경제와 같은 신문매체들이 '보수적 이념과 가치'를 지향하는 언론이라면, "국민의 건강권"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협상 과정에서 미국 측이 제시한 굴욕적인 수준의 협상안에 이렇다 할 개선책 하나 제시하지 못하고, 검역권 마저 미국 민간업자들에게 넘겨줬으며, 미국 스스로 '논의' 수준으로 표명한 안을 국내에서 '90점짜리 재협상안'으로 호도한 외교통상부와 농림부에게 우선적으로 비판의 날을 세웠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폭력, 비폭력 논쟁과는 무관하게, 이들 매체들은 정부 대신 촛불을 든 국민들을 상대로 날을 세웠습니다. 그들 스스로 노무현 정권 당시 광우병 문제를 특집기사로 다루면서 미국 쇠고기 수입 건에 관한 구체적인 문제제기를 한 사례가 있음에도, 정권이 바뀌면서 고작 6년 만에 논조를 뒤엎은 셈입니다.

2.

"예전 황우석 사태 때 PD수첩에 대해 지금과 비슷한 네티즌들의 광고중단 압박이 있었고, 그때 조선일보를 비롯한 자칭 '보수 매체'들이 그 광고압박에 대해 동의하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던" 사례에 대해서는 더 길게 설명드리지 않겠습니다. 여건이 되신다면 조선일보 05년 11월 25일자, 05년 12월 8일자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조금 다른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시민단체 간부들이 그들의 공익목적을 관철하기 위하여 일반시민들을 상대로 공연관람을 하지 말도록 하거나 공연협력업체에게 공연협력을 하지 말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의 주장을 홍보하고 각종 방법에 의한 호소로 설득 활동을 벌이는 것은 관람이나 협력 여부의 결정을 상대방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기는 한 허용된다."

"일반적 영업권 등에 대한 제한을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이는 시민단체 등의 정당한 목적수행을 위한 활동으로부터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현상으로서 그 자체에 내재하는 위험이라 할 것이므로 시민단체의 간부들의 그와 같은 활동이 위법하다고 할 수는 없다."

지난 100분 토론에서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과 관련하여 송호창 변호사가 "마이클 잭슨 공연 반대 사건"을 거론하며 불매운동의 위법성을 거론했습니다. 그러나 위에 인용한 해당 사건의 대법원 판결문에서 보듯, 공익목적을 관철한다는 조건과 불필요한 폭언이나 관계자 신변 위협 등의 '위법적 요소'를 삼가는 조건 하에서 광고 불매운동은 합법적인 소비자 주권 운동입니다. 위에서 거론하신 '테러 수준'의 압력에 대해서는 그것대로 비판할 일이지, 불매운동 자체를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공공복리에 크게 반한다"는 것이 정의되지 않는 이상 기업에게 강요할 수 없는 문제임을 말씀하셨는데, 언론매체가 사회 내에서 갖는 공공성의 무게를 감안한다면 말씀하신 "공공복리"라는 가치의 기준은 더욱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광고 불매운동의 '위법성' 논증에 매일같이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들 스스로 천명하고 있는 "공공복리"를 준수하고 있을까요. 7월 2일자 신문에 실린 의견광고 "폭동을 응원하는 MBC와 천정배 의원은 國法이 두렵지 않은가?"와 바로 그 위에 실린 사설("이번 광고주 협박사태를 보면 인터넷 폭력과 사이버 테러를 더 이상 포털들의 자정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을 보자면 "공공복리"라는 표현이 무척 사치스럽게 느껴집니다.

3.

촛불집회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피력하시는 분들 중 상당수가 "정치적 이익단체들이 '순수한' 촛불의 취지를 흐리고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십니다. 그러나 "정치적 성향을 띈 단체"든 "정치적인 목적으로 촛불집회를 이용하려는 단체"든, 1번 단락을 통해 말씀드린 바에 기초하자면 위와 같은 표현은 사실 맞지 않습니다. 촛불집회 자체가 원론적으로 "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시작된 것입니다. 정치란 그 자체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일반적 규칙을 만들고 보존하며 수정하는 활동"을 포괄하는 개념이지, "'순수'하지 못한 당파적 이득을 추구하는 행위나 언동"을 의미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다른 생각, 다른 견해라 하여 매도당하지 않고 존중받길 원하신다는 馬군님의 다원주의적 견해와 위에서 언급한 '정치'의 개념을 확장시켜 보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사회 내에는 수많은 이익집단들이 있습니다. 저마다 생존과 번영을 위해 추구하는 이익의 개념이 상이하며, 이로 인해 갈등과 조정의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이러한 이익집단들도 그들 자신의 이익을 넘어서 사회가 올바르게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공공적인 가치, 즉 '공공선'이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차원에서 연대하고 뭉치며,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지지를 얻기 위해 대중 앞에 공개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런 경우를, "자기들 일이나 할 것이지 엄한 핑계대고 나선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파업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파업 그 자체는 노동쟁의 행위로써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및 근로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는 행위입니다만, 그러한 이익행위를 넘어 "국민의 건강권"이라는 '공공선'의 가치를 구현하고, 그러한 정치적 문제에 관해 자신들의 주장을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현행법상 정치적 목적의 파업은 불법입니다만, 현 촛불집회나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 등의 합법성 여부에 관한 견해는 나중으로 미뤄두겠습니다.

4.

촛불집회에 관한 공권력의 강경진압 건에 관해서는 별로 쓸 말이 없습니다. 어느 단체나 조직에도 소속되지 않은 개인으로서, 6월 4일 이후 이틀에 한 번 꼴로 현장에 다녀왔던 저로서는 "심하게 비정상적인 폭력시위"라는 표현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논리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경험은 잡담이며 경험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논리는 공론이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정치가로서 그의 행적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말을 인용해 봅니다.

굳이 링크하기는 뭐하지만, 5월 24일부터 촛불집회 상황을 사진자료와 함께 일일단위로 기록하신 분의 개인 블로그(링크 걸려있습니다)를 쭈욱 돌아보시길 권합니다. 촛불집회의 발전 양상과 더불어, 사태의 흐름을 되짚어 나가시는 데에도 비교적 유용하리라 생각합니다.

5.

노동법에 따르면 '정치적 목적'을 표명하는 차원의 노동조합 파업은 불법입니다. 매일 저녁 촛불을 들고 모여 쇠고기 재협상과 불매운동, 정권퇴진 운동을 주장하는 집회는 도로교통법과 집시법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불법행위입니다. 따라서 법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행위들을 현행법이 제시하는 판단 기준에 맞추어 남김없이 근절시키고, 그에 가담한 모든 관련자들을 법에 따라 처벌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법은 최소한의 사회 규범이자, 국가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실현되는 규범임을 아시리라 믿습니다(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에 더욱 우선하는 자유권적 기본권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신체의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이 이에 해당하며, 모두 헌법에 의해 그 근간이 인정되는 기본권들입니다. 현행 법률은 그 필요가 불가피할 경우에만 국민의 기본권을 '극히 일부' 제한할 수 있으며, 그 정도도 '최소한'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위에 열거한 노동법, 도로교통법, 집시법 등은 이와 같은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대표적인 경우들입니다(그 훼손의 정도가 어떠한가를 서술하려면 공히 책 한권을 써야 할 것입니다. 하니 관련 서적이나 논문도 좋고, 위 내용을 간략하게 담은 인터넷 만화들도 많으니 권해드리겠습니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내용도 아닙니다).

해당 법률들에 관하여 기본권 침해 건으로 오래 전부터 꾸준히 문제제기가 이루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대권과 지방선거, 원내 의석수 싸움에만 치중하는 입법부(한나라당, 민주당)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따라서 이 두 정당을 각기 보수-진보의 잣대로 나누어 판단하려는 견해에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 두 정당이 걸어온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 보신다면, 실은 둘 모두 보수-진보가 각각 표방하는 이념적 가치와 별로 연관이 없는 집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입법부를 통한 삼권 분립이 무능화된 상황에서, 공권력을 통해 강제적으로 작동하는 법률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의 영향력을 더욱 증대시키고, 궁극적으로는 행정부를 장악한 일부 위정자들과 그를 보좌하는 극소수 집단의 이익에 봉사하기 십상입니다.

2008년 현재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단지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가방과 몸을 수색당하고, 귀가길에 사복 경찰들에게 납치당하고, 앞줄에서 스크럼을 짜고 대치했다는 이유로 곤봉에 맞아 실려나가는 80년대식 '불법적' 진압 풍경이 단순히 강경진압 정도로 그려지는 것은 옳은 일일까요? 그러한 패륜적 상황에서 공권력의 횡포를 견제하기 위한 마지막 민주적 수단으로써 국민들이 행할 수 있는 방안이 바로 '시민 불복종'의 개념이고, 시청광장에 모였던 이들은 그러한 불복종을 60일이 넘도록 실천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정황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합법/불법이라는 잣대로 사태를 파악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매우 단편적인 인식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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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은 아레치 분위기에 이렇게 긴 본문과 리플을 보기도 오랜만인 듯 합니다. 공연히 끼어들어 분위기에 초를 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만, 본문과 야차님의 덧글, visualpurple님의 덧글, 그리고 그에 이은 馬군님의 반론을 읽으면서 나름 느낀 바가 많아 몇 자 적는다는 것이 이렇게 길어졌습니다. 긴 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