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생계형 아르바이트인거다..- _-)가 끝나면 3분정도 걸어서 구로디지털단지역에 도착한다.
나름 세계화에 힘입어 지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자와 영어가 뒤죽박죽인 이 웃기는 역이름 말마따나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아파트 몇개 빼곤 산업단지밖에 없는것 같다. 지하철도 듬성하니 계단을 올라가 추운 난간을 지나야 탈 수 있게 되어있고.


추운 난간을 지나야 지하철을 탈 수 있는데,
그 추운 난간에 항상 할아버지가 앉아계신다. 한 눈에 봐도 맛없어 보이는 찐빵과 초라한 뻥튀기 몇 봉지를 파시면서. ㅡ아주 가끔 군밤장수 털모자를 쓰고도 파란 마스크를 하고도 낡아빠진 목장갑을 끼고도 추운 날씨에는 안나오시지만. ^^;


맛없어 보이는 찐빵과 초라한 뻥튀기 몇 봉지를 파시면서,
과연 하루에 얼마나 버실까, 밤에 뜨신 보일러 땔 정도라도 되시려나, 난간 위는 춥고 사람들은 제 갈길 바쁜데. 괜히 마음이 쓰인다. 동정은 아니다. 그 분은 꿋꿋하게 자신의 살림을 지키는 것인데. 남한테 구걸하지 않고 손가락질 받지 않고 떳떳하게.


손가락질 받지 않고 떳떳하게,
그렇게 살아오셨을 건데, 오늘 왠 성인 남자 두명이서 할아버지에게 시비를 거는걸 봤다. 내 얼추 기억으로는 역 밑 트럭에서 뻥튀기 장사를 하는 사람들 인것 같다. 생계를 위한 싸움일까, 할아버지한테 뻥튀기는 팔지 말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할아버진 그냥 앉아서 잠자코 듣기만 하다가, 언짢아하시다가, 또 자기 혼자 별 수 없으니 듣기만 하다가, 그러셨다. 나는 잠시동안 멈춰서 지켜보다가, 그 깡패같은 것들을 말리고 싶어서 움찔 거리다가, 다시 조금 지켜보다가, 결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게,
제삼자가 갑자기 껴들면 완전 이상하니까? (그건 그래) 나는 여자니까 혹시라도 그 사람들이 때릴까봐 무서워서? (맞고다닐 덩치는 아닌데=ㅂ=;) 그 남자들이 좀 지나치긴 했지만 난 사실 누가 잘못한건지는 모르니까? (할아버지가 잘못하신 걸 수도 있으니..) 등등의 갖가지 이유가 있었다. 궁극적인 것은, 내가 아 진짜 비굴해서. 결국 남 일에 내가 손해볼까봐 두려웠던 것이고... (나도 이런 내가 싫어)

결국 남 일에 내가 손해볼까봐 두려웠던 것인게
나 뿐만은 아니고, 지나가는 사람들 전부 그랬던것 같다. 할아버지와 그 청년 둘에게는 눈길 한번 안주고 스쳐지나가더라. 사실 자신에게는 아무 일 없으니까.

그렇게 아무 일도 없으니
꼭 투명인간 같았다. 할아버지와 심각한 청년 둘과 그리고 멀찍이서 힐끗 훔쳐보는 나와 지나가는 사람 모두다. 나도 곧 꼬리를 내리고 무관심한 사람11 로 합류했다. 그 후 두어시간 정도는 마음이 무겁고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할아버지가 당했던 그 부끄러움은 이내 기억에서 투명해져있었다.


그러고 나니,
조금 답답해졌다.
내 속은 이렇게 불투명한데도,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린 서로 투명인간이 되어버린다.  
다른 누군가가 처한 곤경이나 어려움이
내겐 절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제 조금은 타인이라는 게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불의를 참는 나도 완벽하게 타인.











그래도 할아버지 다음번 과외날에 또 뵈었음 좋겠다
요샌 부쩍 뻥튀기가 자주 먹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