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란 힘센 놈들이 만들어 낸 거짓말이었다. 비폭력은 그놈들이 뱉어낸 거짓말에 쳐준 맞장구였다. 그 둘이 함께 먹고사는 공생관계 속에서 세상은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져 왔다. \'평화주의\', \'무저항 비폭력주의\' 같은 말들이 얼마나 위험하고도 반시민적인 것들인지를 나는 버마전선에서 체험했다.\"

― 정문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중에서  (한겨레신문사, 2004)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지나가는 하루하루에 감사해야 했던 이곳의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그래도 \"설마 이번이 마지막이겠어\" 하며 등 뒤로 돌아가 슬며시 셔터를 눌러댔던 기억이 난다. 지금처럼만 고요히 시간이 흘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곳 주민들이 바라는 대로 제 땅에 마음 편히 농사 지을 수 있게 되고, 반전평화의 기치를 걸고 이땅이 남의 나라의 전초기지가 되는 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의 바람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와 같은 염원들은 \"작금의 국제정세와 현실을 직시하라\"는 복덕방 할아비식 논리에 묻혀 나가떨어졌고, 보상금 문제 외엔 애시당초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국민\'들은 그나마도 힘겹게 버텨오던 사람들에게 \'비폭력 무저항\'의 시위 원칙을 어겼다는 이유만으로 침을 뱉어댔다.

예전부터 내게는 어떠한 일의 향방을 가정하면서 일단 안좋은 경우들부터 계산하고 걱정하는 나쁜 버릇이 있었고, 불행히도 그렇게 \'설마\' 하며 가벼이 넘겨왔던 안좋은 예감들은 대개 수 일이 지나 들어맞는 섬뜩한 경우가 많았다. 닷새 후, 대추분교는 13,000여명의 군·경찰·민간 병력에 의해 콘크리트 몇 더미로 조각나 부숴졌다. 이날은 나에게 있어 대추분교를 두 눈으로 지켜본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 되었다.


2006-04-29
대추리-대추분교

hi-matic F  # tmax400

옛 첨부파일 안내

아래 원본 첨부는 현재 백업에서 복구하지 못했습니다. 글과 댓글은 보존되어 있습니다.

  • 000036.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