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연(然) 록 사운드의 집대성


래디오헤드(Radiohead)는 비교 대상이 없는 밴드다. 이는 후신 밴드들이 래디오헤드를 흉내내고 영향받는 것은 가능해도, 래디오헤드에게서 누군가의 영향을 발견하기는 어렵다는 의미에서다. 한편으로 래디오헤드는 지상의 마지막 ‘예술가연(然)’한(그럴 자격이 있는) 록 밴드이기도 하다. 기타 록의 극단을 실험한 [Ok Computer]와, 정 반대 지점에서 록의 영역 확장을 모색한 [Kid A]를 통해 록 음악은 또 한번 ‘예술’로 취급 가능한 것이 되었다. 이들의 노랫말은 단순히 내면적인 독백을 넘어 ‘꼬마 안드로이드’와 ‘모조 플라스틱 나무’를 꿈꾸는 우주적 환영에까지 도달했고, 아울러 그렁그렁한 기타 사운드의 충격은 드럼 루프와 환상적 신서사이저 배경음으로 영역을 넓혔다. 여기에 톰 요크의 귀기어린 목소리가 청자의 불안과 혼란을 선동하며, 래디오헤드의 작품은 어떤 음악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오리지널을 얻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래디오헤드의 음악을 다른 아티스트의 작품과 대조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는 중이다. 래디오헤드의 음악은 철저하게 래디오헤드의 이전 작업들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설명이 가능하다. (피치포크의 필자 크리스 오트(Chris Ott)도 이 점을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많은 래디오헤드 팬들이 [Kid A]와 [Amnesiac]을 거치며 갈구한 것은, [Ok Computer] 이전까지 들려주던 강렬한 ‘기타 록’이었으리라. 그러나 밴드는 한계에 달한 록 사운드에 집착하기보다는, 다른 영역으로 탈주하는 길을 택했다(현명했다). 몇몇 매체를 통해 새 음반은 다시 예전의 기타 록에 가까운 음악이 될 것이라는 언급이 있었고, 이 때문인지 새 음반에 대한 더없이 높은 기대치로 인해 발매되기도 전에 mp3가 유출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팬들의 기대 그대로, 강렬하게 후두부를 가격하는 기타 사운드가 펼쳐질까? 래디오헤드는 그처럼 호락호락한 친구들만은 아니다.

조지 부시의 대통령직 ‘도둑질’을 비난하듯, 음반 타이틀은 [Hail to the Thief] (우리 말로 하면 ‘도둑 만세’)라는 의미심장한 문구를 달고 있다. (이전 [Kid A]의 부클릿이 토니 블레어에 대한 비난을 담고 있었음을 기억한다면, 이들의 ‘정치적 색채’를 금새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음반은 래디오헤드 멤버들이 밝혔듯, 밴드의 “모든 것을 집대성”했다는 느낌을 준다. 여전히 곡 전개는 불규칙하고 즉흥적이며, 예의 선병질적 선율 감각도 그대로다. 노랫말은 우주적 싸이키델리아를 표현한 최근 작업들과는 달리 개인과 현 세계의 문제에 더 많은 이야기를 할애하고 있다. 예고대로 기타 사운드가 강조된 것은 사실이나 예전처럼 그런지한 지글거림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기타 록 음반 [Ok Computer]와 익스페리멘탈 혹은 포스트록 작품집 [Kid A]의 큰 간극 사이에서 절충을 시도한 흔적이 곳곳에 보이는데, 두 대조적인 요소들 간의 절묘한 균형 감각이 도드라진다. 기타 사운드와 전자음, 둘 간의 결합은 버스(Verse)에서는 건반이 주도하다 코러스에서 록 세션이 휘몰아치는 방식(“Sit Down, Stand Up”)으로 이루어지거나, 또는 배킹 기타와 신서사이저가 동시에 진군하는 형태, 그도 아니면 록과 일렉트로니카 가운데 한쪽에 세를 몰아주고 급박하게 반전되는 부분에서 전세를 역전시키는 방식 등으로 행해진다. 한편 [Kid A]를 거치며 해체되고 난해해진 선율은 한결 간명해졌고, 동일 어구를 반복하는 방식을 통해 묘한 캐치(Catch)함도 생겨났다. 이런 면에서 “모든 것을 집대성”했다는 밴드의 설명은 적확하다.


음반의 문을 여는 곡 “2+2=5”는 자폐적이고 이단아적인 화자(“너는 그런 몽상가니? 세상을 옳은 것들로 바꾸어 놓으려는? 난 2 더하기 2가 언제나 5가 되는 곳에 언제나 머무를거야... 도둑에게 경배를!!!” - Are you such a dreamer? To put the world to rights? I\'ll stay home forever, Where two & two always makes up five… All hail to the thief)의 독백이, 예전 래디오헤드를 연상하게 하는 기타 사운드에 어우러진다. 절충은 이 곡에서부터 재현된다. 초반부 잡음이 만들어내는 절룩거림, 오밀조밀한 배킹 기타와 프로그래밍 리듬의 조화, 그리고 근래 래디오헤드 음악 중 단연 간명한 선율. 물론 여기서는 무게중심이 팬들이 기다리던 ‘기타 록’에 근접해 있다.

반면 뒤를 잇는 “Sit Down, Stand Up”은 일렉트로닉에 비중을 두고 절충을 시도한 곡이다. 신서사이저의 음산한 잔향과 불길한 건반 연주로 시작, 조금씩 긴박하게 고조되다가 이내 (심벌을 주로 가격하는) 격렬한 드러밍과 온갖 노이즈와 사운드의 덩어리로 뒤덮인다. “앉아라 일어서라, 지옥의 아가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라, 언제든 우리는 너희를 전멸시킬 수 있다, 빗방울쯤은… (Sit down, Stand up. Walk into the jaws of hell. We can wipe you out anytime. The rain drops…)” 운운하는 가사가 ‘묵시적’이라는 언급은 사족일 것이다.

처음 두 곡에서 볼 수 있듯, 음반은 ‘록 사운드’와 ‘일렉트로닉’이 어떻게 접점을 찾고 조화를 이뤄 가는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이어지는 “Sail To The Moon”은 “I Will”과 더불어 음반의 2대 ‘발라드(?)’곡으로, 에코를 먹인 음산한 보컬과 귀기어린 신서사이저 배경음의 잔향과는 딴판으로 톰 요크가 자신의 아들에게 바치는 노래라 한다. (멋진 아버지다!) 또 하나 눈여겨볼 곡은 “We Suck Young Blood”인데, 핸드클랩(Hand Clap – 박수 소리!) 퍼커션과 재지한 화성이 침잠한 건반 연주에 어우러진다. 조신하던 곡은 곡의 중반부에 급격하고 광폭하게 반전을 이뤘다가 다시 초반부의 잔잔함으로 돌아가는데, 이 급진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인위적 태를 내지 않는다. 이런 요소는 분석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이들의 곡 작업이 상당부분 즉흥적인 발상과 영감을 토대로 이루어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 평자는 “음들이 세상의 권태를 압도하면서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상상에 빠지”게 하는 곡이라고 했는데, 적절한 표현이다)

첫 싱글이기도 한 “There, There”는 아프리카 퍼커션과 묵직한 베이스 기타가 만들어내는 인트로가, 흡사 제사(祭祀)의 전주곡 같은 엄숙한 무드를 조성한다. “단지 당신이 느낀다고 해서 그게 정말 존재하는 건 아냐, 언제나 당신이 침몰하길 바라며 노래하는 요정 세이렌이 있는 법. 이 암초들로부터 멀리 키를 잡아라…(Just cos you feel it doesn’t mean it’s there. There\'s always a siren singing you to shipwreck. Steer away from these rocks we\'d be a walking disaster…” 하는 노랫말은 제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시종 불친절하게 울려대는 기타 톤은 “Optimistic”을 떠올리게 한다.

또 하나의 발라드곡(?) “I Will”과 “A Punch Up At A Wedding”은 에코를 먹이고 오버더빙한 톰 요크의 배킹 보컬이 노래의 귀기를 가중시킨다. 한쪽 트랙에서는 낮은 톤으로, 다른 트랙에서는 팔세토 창법으로 아스라하게 읊조리는 톰 요크의 노래는 무언가에 홀려 이끌리는 사람처럼, 사막에서 길을 잃은 정신병 환자처럼 보인다. 혹은, 마치 청자가 그런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굳이 따지자면 [Amnesiac]에 친밀한 곡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제 음반 후반부. 퍼즈톤의 베이스 기타 리프와 긴 딜레이의 신서사이저 배경음이 ‘절충’되는 “Myxomatosis”를 지나면, 음반을 관조적으로 마무리하는 두 곡이 등장한다. “Scatterbrain”은 맞물리는 두 대의 기타와 스네어 드럼의 가벼운 걸음이 톰 요크의 선병적 보컬과 만나고, “A Wolf At The Door”에서는 왈츠 리듬(!)으로 사뿐 사뿐 마감된다. 언제나처럼 이들 음반의 마지막은 청자에게 한껏 부여한 혼란을 수습하는 대신, 음울한 형태로 양껏 증폭시키며 끝난다.


다시 한번 강조하게 되는 것은, 래디오헤드는 지구상의 (어쩌면) 마지막 ‘예술가연’하는 밴드라는 점이다. 또 한번 강조하자면, 여기에는 톰 요크의 카리스마나 음향적인 실험, 그리고 노랫말과 같은 요소들이 작용해 왔다. 그리고 또다시 한번 이야기하자면 이 음반 [Hail to the Thief]는 이전 래디오헤드의 모든 작업의 집대성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록 음악으로 ‘젠체’ 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이 집결해 있다. 선율은 어둡지만 간결하고 한없이 매혹적이다. 노랫말은 환상적인 서사시이며 하나의 서정시이기도 하다. 불편한 기타와 불온한 노이즈가 한데 어울려, 내면으로 가라앉고 우주적 싸이키델리아로 확장하기를 거듭한다. 이런 요소들이 온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 결합과 절충, 집대성의 미학은 충분히 매혹적이다. 이렇게 해서, 록 음악이 ‘예술’이라는 주장은 또 한번의 근거을 얻었다.


Rating…… ****1/2

옛 관련 링크: http://imazine.hihome.com/radiohead-6.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