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
전혜린의 이 책을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비롯한
린저의 많은 책들을 읽었다.

그리고 헤르만 헤세,
토마스 만 등등..

독일 작가들의 책을 읽게 된데는 아무래도
전혜린의 이 책이 시발점이 되었던 것 같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나와
한밤중에 교정의 히말라야 삼나무 밑에 앉아서
나는 끝도 시작도 없는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2.
작년 여름, 나는 뮌헨을 갔다.
뮌헨 교외에 있는 홀리데이 인 호텔에 짐을 풀고
전혜린이 살고 공부하였던 <슈바빙>으로 갔다.
그녀가 자주 갔다는 카페는 이제 스페인 식당으로 바뀌어서 옛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뮌헨대학 카페에서 식사를 하고 맥주를 마시며 거의 하루 종일을 보냈다.
공원 벤치에서 한나절 잠을 자기도 하고
무작정 거리를 걸으며..며칠간을 보냈다.

수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의, 열 일곱살의 그날들로 돌아갈 수 있었다.

3.
전혜린이 살았던 생애보다도 더 많은 생애를 살았지만
아직도 내 정신은 그녀의 십분의 일도 못미치는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괴테의 말처럼
나는 아직도 방황하고 있으므로
언젠간 그녀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